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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사운드스케이프: 소리가 사라지는 도시에서의 청각 환경학

by arenestup2025 2025. 7. 18.

도시의 사운드스케이프: 소리가 사라지는 도시에서의 청각 환경학, 오늘은 도시의 사운드스케이프에 대한 글을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자동차 소리, 전철의 멜로디, 사라지는 일상의 소음 기록하기

 

도시의 사운드스케이프: 소리가 사라지는 도시에서의 청각 환경학
도시의 사운드스케이프: 소리가 사라지는 도시에서의 청각 환경학

익숙한 소음, 사라지는 감각

 

“어느 날 아침, 내가 늘 듣던 소리가 사라졌다.”

도시는 언제나 시끄러운 공간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흔히 '도시 소음'이라 부르며, 피로의 원인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조금만 더 귀 기울여 보면, 그 소음들 속에는 우리 삶의 리듬이, 일상의 기억이 담겨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침 출근길, 버스가 정차하며 울리는 '삐–' 소리.
지하철역에서 들리는 ‘띠링띠링’ 도어 클로징 멜로디.
횡단보도 신호가 바뀔 때 나는 경쾌한 알림음.
편의점 문이 열릴 때 자동으로 반겨주는 전자음.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 거리의 호객 음성, 멀리서 들리는 응급차 사이렌…

이 모든 소리들은 도심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익숙한 ‘소음’들이 하나둘씩 줄어들고 있다.
전기차의 확산으로 도로는 조용해졌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온라인으로 옮겨졌다.
비대면 사회가 일상이 되면서 대면 상점의 호객 소리도 줄었다.
심지어 ‘조용한 도서관형 카페’가 늘어나고, 백색소음을 차단해주는 이어버드가 일상이 되었다.

도시는 여전히 북적거리지만, 점점 더 '조용해지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환경 변화가 아니다.
감각의 재편성, 그중에서도 청각 환경의 진화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라지는 소리’는 단지 음파의 소멸이 아니라, 기억의 소멸이며,
우리가 도시에 대해 품고 있던 감각적 정체성의 변화이기도 하다.

 

도시의 소리를 기록하는 사람들: 사운드스케이프란 무엇인가

 

소리가 사라지는 도시에서,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소리를 ‘채집’하고, ‘기록’한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이 바로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즉 소리 풍경이다.

사운드스케이프란 특정 장소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의 조합을 의미한다.
이는 단지 '녹음된 소리'가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와 정체성을 구성하는 청각적 요소다.

이 개념은 1970년대 캐나다 작곡가이자 환경 음향학자였던 머레이 샤퍼(R. Murray Schafer)에 의해 대중화되었다.
그는 현대 도시에서 사라지고 있는 소리를 수집하고 분류하며,
이들 소리가 인간의 인식과 감정, 기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했다.

샤퍼는 소리를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키 사운드(Key Sound): 장소를 상징하는 대표적 소리 (예: 종로의 종소리, 지하철 멜로디 등)

시그널 사운드(Signal Sound):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는 소리 (예: 학교 종, 경고음 등)

사운드 마크(Soundmark): 그 장소에서만 들을 수 있는 독특한 소리

이 분류는 우리가 소리를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장소의 정체성과 감정적 연결고리로 이해해야 함을 보여준다.

요즘은 이러한 소리들을 수집하여 아카이빙하는 ‘도시 사운드 큐레이터’, ‘음향 기록자’ 등의 활동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의 골목 소리, 뉴욕의 새벽 지하철 소리, 교토의 자전거 종소리 같은 것들이
디지털 음원 형태로 보존되고, 전시되며, 심지어는 사운드 여행 콘텐츠로 재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도시 정책에서도 청각 환경이 중요해지고 있다.
일부 도시에서는 ‘도시 소리 지도’를 제작하거나,
노이즈 캔슬링이 아닌 ‘소리 보존’에 초점을 맞춘 청각적 유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제 도시의 소리도 ‘기록해야 할 문화’가 되었다.
이전까지 시각 중심으로 이뤄졌던 도시 기록의 방식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소리 없는 도시의 풍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술의 발전은 도시의 소음을 줄여주었지만, 동시에 감각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사람들은 시각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고, 청각은 점점 배제된다.
이어폰으로 차단된 외부 소리, AI 스피커로 대체된 인간의 목소리,
버스정류장에 울려 퍼지던 안내 방송조차 자동화된 로봇 음성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거의 도시는 소리를 통해 공간을 인지하고,
소리의 방향, 간격, 크기를 통해 사회적 거리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각과 촉각에만 의존하며, 청각적 감각은 무뎌지고 있다.

그 결과, 도시는 더욱 익명화되고, 무표정해진다.
사람의 목소리가 줄고, 소통의 흔적이 줄어들며, 장소는 기억의 밀도를 잃어간다.
우리가 소리 없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쩌면 점점 더 도시와 ‘감정적 거리’를 두게 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소리 없는 도시는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더 정돈되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기억되지 않는 도시, 사람 냄새가 없는 거리,
공유되지 않는 정서만이 남는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소음 속에도 정체성이 있고, 불편한 소리 속에도 살아있는 감정이 있다는 점이다.
완벽히 조용한 도시가 아니라,
조화롭고 살아있는 도시 사운드스케이프를 어떻게 보존하고 설계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마무리: 도시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
도시의 소리는 우리 기억의 일부다.
하굣길 문방구 앞의 게임 소리, 새벽시장 트럭의 시동음,
지하철 2호선 문이 닫힐 때 나는 특정 음표.
이 모든 소리들은 도시를 도시답게 만들고,
그 도시 속 ‘나’를 구성하는 감각적 조각이었다.

소리가 사라지는 지금, 우리는 물어야 한다.
도시는 무엇을 들려주었고,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이제부터라도,
당신의 도시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여보길 바란다.
기록되지 않은 사운드는 영원히 사라지지만,
한 번 기억된 소리는 오래도록 그 도시를 살아 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