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의 진짜 시간: 노동 없이 살아보는 3개월 실험기, 오늘은 퇴사후의 진짜 시간에 대한 글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비생산성, 무위(無爲), 개인 회복을 중심으로 한 실험적 삶
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퇴사 후 마주한 공백
퇴사 직후의 하루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알람도, 메신저 알림도, 회의 링크도 없는 아침.
어쩌면 처음으로 내가 내 하루를 오롯이 지배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그 자유는 곧 불안으로 바뀌었다.
‘내가 지금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뼈에 사무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불안한 인간'이 되었을까?
그 질문에서 3개월짜리 실험이 시작되었다.
이름하여 노동 없는 삶 실험.
목표는 단순했다.
‘노동’이라 불리는 유상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생산성의 강박에서 벗어나 무위(無爲)의 시간을 살아보는 것.
즉,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
계획 없이 시간을 허비하고, 목적 없이 거리를 걷고, 의미 없는 활동을 일부러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리에게 내재된 ‘생산성과 성과 중심의 가치관’은 놀라울 만큼 뿌리 깊었다.
퇴사 직후의 나는 휴식도, 무력도, 여유도 하나같이 죄책감과 함께였다.
단순히 직장을 떠난 게 아니라, 사회적 정체성과 인정의 프레임까지도 내려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내가 쓸모없어지는 것일까?"
이 질문은 곧, 내 존재 가치의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각을 요구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실험은 예상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성찰로 나를 이끌었다.
무위의 시간 속에서 발견한 것들
일하지 않는 날들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시간의 질감이 변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기존의 시간은 ‘쪼개지고 분배되어야 하는 자원’이었다면,
지금의 시간은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감각’에 가까웠다.
처음엔 무기력하게 침대에 눕거나,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하루를 끝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시간 속에서 작고 조용한 감각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오후 3시, 햇살이 바닥에 드리우는 각도
아무 목적 없이 걷는 산책길에서 듣는 바람 소리
혼자만의 낮 영화관에서 듣는 다른 관객의 조용한 숨소리
밥을 지을 때 나는 첫 증기의 냄새
이런 감각들은 일상 속에서 철저히 무시당하거나 삭제되던 감각이었다.
늘 시간에 쫓기며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해야 했기에, 그 작은 순간들은 보이지 않았고 느낄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감각들이 모여서 '살아 있음'이라는 감정의 뿌리가 되기 시작했다.
무위는 무기력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가장 능동적인 상태일 수 있다.
아침에 무엇을 할지 정하지 않고 일어나는 일, 아무 약속도 잡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일, 어떤 성과도 기대하지 않고 무작정 책장을 넘기는 일.
그 모든 것이 행동으로서의 무위, 회복으로서의 쉼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일하기 위해 쉬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쉬어야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고민할 시점이다.
퇴사 후 삶의 방향을 다시 묻다: 비생산성의 재발견
3개월이 흐르고, 나는 이 실험이 단순한 ‘쉼의 기록’이 아니라
노동 중심 사회에 대한 근본적 저항이자 회복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의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를 측정한다.
출근 시간, 할 일 목록, 성과 지표, 팔로워 수, 조회수, 자기계발.
심지어 휴식조차 "더 잘 일하기 위한 효율적 충전"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진짜 삶은 그렇게 도식화될 수 없다.
쓸모 없음의 시간, 목적 없음의 순간이야말로
우리를 사람답게 만들고, 우리 존재의 결을 풍부하게 만든다.
이 실험을 마치며, 나는 앞으로의 삶에서 몇 가지를 다르게 가져가기로 했다.
‘의미 없음’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하기
주말엔 아무 약속도 잡지 않기, 오후 한 시간은 일부러 멍 때리기.
일하지 않는 나를 미워하지 않기
쉼의 죄책감을 내려놓고, ‘존재 그 자체’로도 충분함을 기억하기.
비생산적인 활동을 삶의 일부로 만들기
낙서하기, 쓰다 버릴 일기 쓰기, 목적 없는 산책하기.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이 내 정체성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일을 통해 성장하고 성취를 맛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 너머에 ‘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 마무리: 무위의 시간이 우리에게 남긴 것
퇴사 후의 3개월은 사회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일 수 있다.
그러나 내게는 가장 많은 것을 느끼고, 가장 깊게 돌아본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나의 삶은 꼭 쓸모가 있어야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님을,
존재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 아름답다는 것을 배웠다.
혹시 지금 퇴사를 고민 중이거나, 인생에서 잠시 멈춤이 필요한 순간에 서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그 공백을 마주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 속에는 삶의 진짜 얼굴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