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피난민과 미래 도시 – 떠나는 사람들과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오늘은 기후 피난민과 미래도시에 대해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기후 난민의 시대: 이제는 '어디로'가 아닌 '왜' 이동하는가
한때 이주는 전쟁이나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떠난다. 기후 위기가 인간의 이동 패턴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해수면 상승, 사막화, 열파, 산불, 식수 고갈 등은 이미 전 세계 곳곳에서 '조용한 이주'를 촉발시키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50년까지 기후 요인으로 이주할 가능성이 있는 인구는 최대 10억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기후 피난민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물리적 거주지를 옮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기반, 문화, 공동체, 기억을 뒤로 하고 이동해야 하는 ‘정체성의 재구성’이기도 하다. 특히 해수면 상승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남태평양 도서국가(투발루, 키리바시 등)나 방글라데시, 몰디브 등의 국가는 국가 전체가 사라질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들은 단지 도시를 잃는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개념 자체를 잃을 수도 있는 첫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떠나는 사람들은 어디로 향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는가?
미래 도시는 누구를 수용할 것인가: '생존 가능한 도시'의 조건
과거 도시는 산업과 무역,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미래의 도시는 더 이상 '기회의 땅'이 아니라, '기후 생존지대'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기후 난민의 수가 폭증하면서 전통적인 이주 경로는 막히거나, 정치적으로 거부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기후 방어 도시’ 또는 ‘생존 가능 도시(Survivable Cities)’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도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게 될 것이다:
기후 내성 인프라: 극단적인 기후에도 견딜 수 있는 주거, 식수, 전력 시스템
친환경 자급 자족 시스템: 에너지와 식량을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생산
복합 거주 시스템: 기후 난민을 위한 유연한 주거 구조와 공존 정책
디지털 행정과 분산 인프라: 위기 상황에서도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는 분산형 도시 운영
예를 들어, 캐나다, 북유럽, 뉴질랜드 등 상대적으로 기후 영향이 덜한 국가들은 향후 인구 증가를 감안한 새로운 도시 설계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기후 친화적 고지대’로 분류되는 이 지역들은 새로운 난민 수용 중심지가 될 수 있으며, 국제적 협력 하에 ‘글로벌 피난 도시 프로젝트’가 구성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보다 느리게 움직인다. 도시 인프라, 행정, 문화적 수용성, 정치적 경계 등은 여전히 수용을 어렵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한 가지 질문에 마주한다: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없다면, 누가 먼저 선택받는가?
떠날 수 없는 사람들: 미래 도시에 포함되지 못한 이들
모든 사람이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으로 떠날 수 없는 사람들, 떠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 혹은 떠나지 못하게 된 사람들. 이들은 기후 위기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이자, ‘보이지 않는 피해자’로 남게 된다.
특히 저개발국, 분쟁지역, 고령 인구, 빈곤층은 이주를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원조차 없다. 기후 변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도, 적응하거나 탈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이주할 자유’가 아니라 ‘남을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 점점 열악해지는 환경 속에 고립된다.
더불어 기후 변화가 ‘국경’을 무력화하면서도, 정치적 경계는 여전히 견고하게 유지되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한 국가의 국민은 외부의 기후 재난으로 이주가 가능하지만, 타국의 기후 난민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국제 정의와 인권의 문제로 이어진다.
미래 도시 설계와 기후 대책은 단지 기술적 해결을 넘어, 누구를 포함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고민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도시가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 하나의 ‘공존의 철학’으로 거듭나야 하는 이유다.
맺으며: 우리가 그리는 도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기후 위기는 단지 기상 변화나 자연재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삶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거대한 변수다. 누군가는 도시를 떠나야 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도시에 편입된다. 또 누군가는 그 경계 밖에서 버티며 남겨진다. 결국 도시란 단지 콘크리트와 철근의 집합이 아니라, 누구를 포함하고 누구를 배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사회적 구조물인 셈이다.
미래 도시를 설계하는 일은 곧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의 윤리를 설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도시 안에 우리는 과연 모두 포함되어 있을까?